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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변증법

by cichoo

세상은 경험으로 체험할 수 있는 세계와 경험할 수는 없고 순전히 생각으로만 접할 수 있는 두 개의 세계가 있다. 이 사유의 세계를 사변(思辨)이라고 한다. 주로 철학에서 쓰이는 단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세상을 바꾸어 놓은 획기적인 일들은 경험보다는 이 사변으로부터 출발했다. 스티브 잡스, 저커버그, 빌 게이츠 등 세계적인 스타트업을 일구어낸 이들은 모두 기술이나 전문지식도 중요하지만, 인문학적 통찰력을 통한 사변의 세계를 중시한 경영의 천재들이다.

사태를 파악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늘 처음은 모호하고 추상적이고 혼란스럽다. 스타트업도 처음 시작하려고 하면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 무엇 하나 속 시원히 잡히는 것이 없다.

흔히 우리가 정(正), 반(反), 합(合)으로 알고 있는(정확히는 즉자(卽者)/대자(對者) /즉자대자(卽者對者)) 헤겔의 부정 변증법이 바로 사변 철학이다. 오랜 철학의 문제를 변증법으로 해결했다.

변증법의 시작은 추상적이고 모호함에서 출발한다. 正의 상태는 모호하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스스로 추상성과 모호함을 탈피하기 위해서 자신을 부정하는(부인한다는 뜻이 아니라 추상성을 탈피한다는 뜻이다) 운동을 시작하여 새로운 反을 만들어 내고 이 反에서 분리된 두 사태는 지양(止揚)하여 새로운 合을 만들어 낸다. 여기서 지양이란 3가지 뜻을 담고 있다. 첫째 버릴 것은 버리고 둘째 유지할 것은 유지하고 셋째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성장 소설 “데미안”에는 “새로운 태어남을 위해서는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현재를 부정하고 억누르고 있는 알을 깨고 나와야 새로운 지양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스타트업에서 늘 하는 말에 고객/제품/제품고객궁합(Product Market Fit) 등이 있다.
책에서는 고객, 제품, 궁합 등이 모두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변증법적으로 말하면 正의 단계에는 이 모든 것이 딱 붙어있어 무엇이 무엇인지 모를 모호하고 추상적인 상태라고 보면 된다. 이 모호하고 추상적인 상태가 서서히 운동과 자기부정을 통해 내가 누구지? 고객은 누구지? 고객에게 무엇을 제공해주어야 고객이 만족하지? 등등 수많은 모호한 점들이 서서히 추상성을 탈피하고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反) 이 과정에서 고객과 제품 간의 관계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고 한 단계 높일 것은 높여 한단계 높은 상태를 만들어낸다(合). 이러한 변증법의 관계 즉 정반합이 2회 3회 4회…무한대로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고객이 누구이고 제품이 무엇인지 명확해지면서 제품고객 궁합이 딱 맞는 필수품(Must Have)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고객, 제품, 가치, 고객 궁합, 비즈니스 모델, Must Have 제품 등등 스타트업에 관련된 많은 용어와 이론들을 따로따로 독립적인 요소로 대상을 연구했던 단계를 넘어 근본이 하나로 시작된 개념으로 이 모든 용어가 마치 데미안의 알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스스로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外化라고 함) 변증법적 사고로 개념을 이해한다면 스타트업 이론 모두를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지게 될 것이다.

여기 씨앗이 하나 있다고 하자. 이 씨앗만 보고는 도무지 이것이 무엇인지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그런데 이 씨앗이 추상성을 탈피하기 위해서 씨앗의 상태를(正) 부정하고 알을 깨고 나와 줄기(反)가 되고 줄기는 줄기를 부정하여 꽃을 피움으로써(合) “아! 이 씨앗이 코스모스였구나”를 알게 된다. 이것이 씨앗의 진실이 된다. 나의 DNA 속에는 나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팔, 다리, 눈, 귀, 피부, 성격, 얼굴 등등. 그러나 DNA 상태일 때는 모든 것이 딱 붙어있어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그러나 이것이 서서히 외화 하면서 “아! 이 DNA는 나였구나”를 알게 된다.

세계 어디에도 스타트업 변증법이란 이론은 없다. 아무도 스타트업을 변증법과 연관해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현자들이 이 부분을 더 많이 생각해서 더 높은 단계로 지양해 나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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