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의 광고 전쟁이 불붙었다. 매일 수천만 원도 넘는 신문 전면 광고가 3~4개씩 올라온다. 12월18일부터 18개 금융기관이 실시한 오픈 뱅킹 서비스 때문이다.
오픈 뱅킹 서비스는 기술적으로는 복잡한 문제가 많지만 보통 수준의 은행 고객 측면에서 말하자면, 여러 은행과 거래를 하는 고객은 이제 한 은행의 앱만 설치하면 모든 은행과 거래를 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고객을 빼앗기면 큰 손실이 예상되는 1등만이 살아남는 승자독식의 게임에서 성공하기 위해 사운을 걸고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취지가 그럴듯해 오픈 뱅킹 앱을 설치해보기로 했다.
다른 은행의 계좌도 등록하고 요청사항을 입력하는데 약간의 인내와 짜증을 참고 앱을 설치했다.
기대하면서 가장 손쉽고 많이 사용하는 계좌이체 송금을 해보기로 했다.
송금 실패 메시지가 떴다.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도움말을 아무리 찾아도 지점 창구를 가지 않고는 해결될 것 같지 않아 지점 창구에 가서 원인을 알았다. 인터넷 뱅킹을 자주 사용하지 않아서 그렇단다. OTP 보안 카드와 공인인증서는(이런 것 없애자는 것 아닌가?) 있는지도 물어보길래, 아! 이건 무늬만 오픈 뱅킹이지 기존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여러 은행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문만 하나 더 달았다고 생각했다. 그냥 집에 돌아와 앱을 삭제했다.
앱을 삭제했는데 문제가 생겨서 또 창구를 찾아갔다. 통장 입 출금 발생 시 핸드폰으로 알려주는 서비스가 안 되어서 갔더니 다시 신청해야 한다고 해서 또다시 신분증 제시하고 서명하고 신청을 했다. 아니 앱을 지우면 기존의 서비스는 완벽히 복구시켜야 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조만간 없어질 지점 창구를 문제 해결의 최종 단계로 생각하는 은행의 사고방식은 결국 외부에 의한 혁신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리버스 이노베이션이란 말은 미국 다트머스 대학의 비제이 고빈다라잔 교수가 집필한 책 “리버스 이노베이션” 때문에 유명해진 단어이다.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마치 위에서 아래로 물 흐르듯이 전수되던 전통적 혁신의 패턴이 이제는 아래에서 위로 혁신의 양상이 달라지는 “역혁신”이 시작되었다는 이론이다
우리의 금융기관은 아마도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기는 어려울듯하다 오히려 스타트업에 의한 리버스 이노베이션이 일어나도록 지원하고 격려하고 기대하는 쪽이 훨씬 가능성이 높을듯하다.
실제로 요즈음 핀테크 분야는 스타트업이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앱을 통한 송금이나, P2P 서비스, 카카오 뱅크나 K 뱅크 등의 등장으로 등 떠밀리듯 은행들이 오픈 뱅킹 서비스 같은 것도 시도해 보는 듯하다.
그러나 지금의 오픈 뱅킹은 무늬만 오픈 뱅킹이다. 오래된 아파트에 페인트칠하고 창문 고친다고 재건축 아파트와 같을 수는 없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
현대는 건너뛰기(skipping) 전략이 가능한 시대이다.
유선전화를 거쳐야 무선전화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가솔린 엔진 자동차 생산을 거쳐야 전기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중국은 유선 전화와 가솔린 자동차 과정을 건너뛰고 바로 무선전화와 전기자동차 산업을 시작했다. 전기자동차는 우리보다 어느 면에서는 앞섰다. 앱으로 결재하기나(알리페이) 공유경제 택시도(디디추싱) 우리보다 중국이 앞서간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IT 강국이 된 것도 모두가 무선전화 방식 결정을 망설일 때 CDMA 방식을 과감하게 제일 먼저 도전한 건너뛰기 전략 때문이다.
현금 없는 디지털 화폐 시대, 은행 지점이 없는 시대, 보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블록체인의 시대, 어느 특정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에 종속되지 않는 시대를
전제로 하는 오픈 뱅킹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건너뛰기 전략이 시작은 늦은 듯하지만 궁극적으로 시간과 돈을 절약하고 세계를 리드하는 제도가 될 것이다. 중간치기 개선은 나중에 되돌리려면 오히려 앞으로 나간 만큼 손해다.
생각만 바꾸면 CDMA 경우처럼 건너뛰기 전략을 시도할 수 있는 모든 요소가 나와 있고 우리의 역량도 충분하다. 혁신적 지도자와 도전이 없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