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정신 나갔니? 정신 차려! 중심 잡아! 꾸중 들을 때 자주 듣던 말이다. 앞으로는 챗GPT가 인간에게 할 말이다.
헤겔식으로 말하면 정신이 내 안에 중심을 잡고 있으면 인간이지만 정신이 밖에 있으면(나가면) 물질 된다.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미래를 과학자에게만 의존해야 하는 슬픈 시대가 왔다. 핵무기, AI, 생명과학이 그렇다. 생명과학과 IT가 힘을 합쳐 핸드폰을 우리의 머릿속에 간단한 수술로 집어넣게 될 것이고 인간의 DNA는 크리스퍼(유전자가위)로 간단히 자르고 붙이고 지지고 볶고 해서 바보를 천재로, 암 발생 요인은 모두 제거해 건강한 아이로 만들 것이며 죽지 않는 영생을 위하여 별짓을 다 할 것이다. 급기야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처럼 인간을 인간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그 용도에 따라 산소 주입량을 달리해서 상품처럼 양산하는 세상을 만들려고 달려들 것이다.
개발자들은 기술만 생각한다. 문제가 생기면 인문학자나 윤리학자나 정치가가 해결할 것이니 남들이 하기 전에 재빨리 개발하는 것이 돈과 명예도 얻고 혁신적이고 인간의 편의성을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한다. 챗GPT를 공개한 오픈 AI의 샘 알트먼처럼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다.
결국 개발자는 돈과 명예를 얻고 피해는 엉뚱한 사람이 본다.
노래방에서는 노래를 잘했는데 야외에서는 할 수가 없다. 가사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계산기에 익숙한 아이들은 시장에서 물건값 계산이 잘 안된다.
의존형 인간은 머리를 쓸 필요가 없다. 마마보이는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잘하지만 중학교만 가면 떨어진다. 중학교부터는 엄마의 실력으로 도와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신체의 기능도 약이 대신해 주면 신체의 기능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퇴화한다.
챗 GPT가 인간의 사유, 추론, 기획, 창의, 응용 등 모든 기능을 퇴화시켜 스스로 아무것도 못 하는 인간을 만들 것이다. 지금 당장 핸드폰을 뺏었다가 일주일 후에 주겠다고 하면 동의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핸드폰이 없으면 가슴이 덜컹한다. 신분이 몽땅 털리고 전화도 걸 수 없으며 길도 잃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눈앞에 보이는 달콤한 꿀 같은 메일 써주기 PPT 엑셀 워드 막일(일본말 노카타)도 해주고 에세이나 시도 써주며 숙제도 해주는 것에 길들여져 서서히 정신 나간 사람이 되고 있음을 모른다. 막일해 주는 인턴사원처럼 옆에 두고 인간은 창의적인 일만 하면 된다고 옹호자들은 말하지만, 창의력은 아기 때 엄마와의 옹알이와 눈 맞춤을 시작으로 유치원 초등학교 중등학교에서 수많은 막일을 하면서 뇌를 훈련시켜가며 서서히 터득하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초등학생에게 대학생의 문장을 들이댄다고 초등학생의 창의력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다. 그 결과 대책 없이 인간 인턴들만 실업자가 된다.
불편해도 챗 GPT 너무 쓰지 마라 공짜로 시작해 벌써 돈 벌려고 유료화하지 않았는가? 막대한 챗 GPT 운영비가 나오지 않으면 개발이 멈춘다. 꼴 보기 싫은 연예인은 우리가 시청률을 떨어트리면 자동 도태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 편하다고 여기저기 마구 쓰면 후손들이 정신 나간 인간이 된다. 현재 중학생 이상은 그래도 좀 낫다. 유모차에 장착된 챗GPT에게 엄마에게 하던 “이거 뭐야”를 물어볼 챗 GPT 이후 태어난 세대는 불편하게 살았던 과거를 모르기 때문에 정신이 나갈 위험성이 크다.
현대 정주영 회장에게 보고를 하면 늘 “해봤어?”라고 질문했다. 챗 GPT에 길들여진 사람은 난감하다. “할 줄 알아야 하지”를 속으로 외치지 않을까?
누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저지르고 몇 년 후에 인간이 어떻게 정신이 나가는 모습으로 변할지 모르는 것이 답답하다. 어쩌면 커다란 저항운동이 일어나 전 지구로 퍼져나갈지도 모른다. 자기와는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들에게 미래를 송두리째 갖다 바치는 사유의 정지상태가 두렵기만 하다.
정신 나간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챗 GPT는 지금 당장 강력한 통제 속에서 발전하여야 한다. 이제까지의 혁명은 몸을 편하게 하는 것이라 견딜 만했지만, 뇌와 DNA를 건드리는 AI와 생명공학은 차원이 다르다.